요약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전자의 메모리 제품에 대해 관세법 303조에 따른 '섹션 337' 조사를 공식 개시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넷리스트(Netlist, Inc.)가 삼성전자의 서버 및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모듈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제소한 데 따른 것입니다. 연방법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넘어, 미국 시장으로의 수입 자체를 금지할 수 있는 ITC로 전선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사건의 개요
2026년 1월 2일, ITC는 삼성전자와 그 계열사들이 미국 관세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쟁점이 된 기술은 고성능 서버와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인 메모리 모듈 기술입니다. 넷리스트는 삼성전자가 자사의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제품을 생산하고 미국 내로 수입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해당 제품의 '한정 배제 명령(Limited Exclusion Order)'과 '중지 명령(Cease and Desist Order)'을 요청했습니다.
이번 ITC 제소는 앞서 진행된 텍사스 동부지방법원에서의 승소 판결을 지렛대 삼아 삼성전자를 더욱 강하게 압박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2023년 4월, 넷리스트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3억 300만 달러(약 4,000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으며, 2024년 말에도 HBM 관련 소송에서 1억 1,800만 달러의 배상액을 추가로 확보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지법 판결은 항소 절차로 인해 실제 집행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는 반면, ITC의 수입 금지 조치는 훨씬 즉각적이고 파급력이 큽니다.
사건의 배경
배상금에서 '시장 퇴출'로의 전략 변화
지식재산권 소송에서 연방법원은 주로 금전적 보상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넷리스트와 같이 근본적인 메모리 아키텍처를 개발하는 기업의 궁극적 목표는 글로벌 라이선스 계약 체결입니다. 세계 최대 메모리 제조사인 삼성전자는 그동안 높은 로열티 전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끝장 소송'을 고수해 왔습니다.
"ITC 조사는 특허 소송의 '핵옵션'입니다. 얼마를 물어내느냐가 아니라, 아예 미국에서 장사를 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현재는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는 'AI 슈퍼사이클' 시기입니다. HBM과 DDR5 모듈은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수적입니다. 만약 삼성전자의 제품이 수입 금지된다면, 이는 삼성의 매출 타격을 넘어 미국 내 AI 인프라 구축 전체에 심각한 병목 현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국내 산업(Domestic Industry) 요건의 성립
ITC 소송의 독특한 관문은 '국내 산업 보호' 요건입니다. 제소자가 미국 내에서 해당 특허와 관련된 경제적 활동(연구개발, 제조 등)을 수행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넷리스트는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으로서 실제 제품 개발 이력을 보유하고 있어, 일반적인 특허 괴물(NPE)보다 이 요건을 충족하기가 유리합니다. 이는 삼성전자에게 매우 위협적인 요소입니다.
전문가 분석 및 시사점
특허 변호사 및 IP 전략가를 위한 제언
- 전략적 포럼 쇼핑(Forum Shopping): 이번 사례는 지법 소송과 ITC 조사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ITC의 빠른 진행 속도(12~15개월 내 최종 결정)에 대비한 방어 전략 수립이 필수적입니다.
- 금지 명령의 실효성: 대법원의 eBay 판결 이후 지법에서 영구 금지 명령을 받아내기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따라서 실질적인 판매 중단 효과를 노리는 기업들에게 ITC는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창구입니다.
- 공급망 리스크 검토: 삼성전자로부터 메모리를 공급받는 완제품 업체(PC, 서버 제조사)들은 이제 '플랜 B'를 검토해야 합니다. 삼성 제품이 차단될 경우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넷리스트의 특허로부터 자유로운지를 면밀히 분석해야 합니다.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
이번 소송의 핵심은 AI 연산의 핵심인 HBM과 고용량 서버용 LRDIMM 기술입니다. 만약 ITC가 수입 금지 명령을 내린다면 미국 내 AI 하드웨어 가격 급등이 불가피합니다. 이 경우 미국 정부가 '공공 이익(Public Interest)'을 근거로 ITC의 결정을 거부할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향후 전망
ITC 조사는 통상 12~18개월이 소요됩니다. 2026년 말경에는 행정법 판사(ALJ)의 예비 결정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수입 금지까지 가기보다는, 삼성전자가 막대한 규모의 합의금을 지불하고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시나리오가 유력합니다. 삼성전자는 이와 병행하여 미국 특허심판원(PTAB)에 당사자계 무효심판(IPR)을 청구하여 넷리스트 특허의 유효성을 깎아내리는 전략을 취할 것입니다. 전 세계 IP 전문가들은 ITC의 결정과 PTAB의 무효 심판 결과가 어떻게 충돌하거나 보완될지 주목해야 합니다.



